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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넘어선 드럼 퍼포먼스 <위플래쉬>

by ARK-T 2022.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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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위플래쉬> 출처: 네이버 영화

<기대가 되는 드럼 연주>

개봉 전부터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았던 영화 위플래쉬입니다. 개봉 전 시사회를 많이 한 영화로 유명한데 국내 시사회 상영 횟수로 신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화제가 컸습니다. 전국 상영관이 400개 내외로 엄청난 규모였으며 첫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4위로 시작하여 15일 만에 전국 32만 9천 관객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바이럴 마케팅의 영향으로 개봉 둘째 주에는 박스오피스 2위까지 올라가더니 3월 20일 킹스맨을 제치고 흥행 1위에 오르며 결국 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전국 104만 관객을 넘어서며 대역전극에 성공합니다. 총 126억 원의 수익을 내고 158만 9,048명의 관객 수를 달성하며 역대 독립 영화 외화 부문 흥행 1위, 역대 3위라는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앤드류는 천재 드러머>

앤드류(마일스 텔러)는 셰이퍼 음악학교의 신입생이자 학교 내 평범한 밴드인 나소 밴드의 보조 드러머입니다. 가을 학기 중 그는 플레처 교수(J.K. 시몬스)를 만나고, 교내 최고의 밴드인 스튜디오 밴드에 발탁되어 밴드의 드러머로서 기회를 얻게 됩니다. 기쁜 소식은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짝사랑하고 있던 니콜(멜리사 베노이스트)에게 데이트 약속을 잡습니다. 최고의 밴드의 일원이 됨과 동시에 좋아하는 여자와의 데이트 약속으로 그는 매우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스튜디오 밴드에서의 첫날 온 지 몇 분 되지도 않아 플레처 교수가 음정을 여러 번 맞추지 못한 트롬본 연주자에게 폭언을 쏟아부으며 그를 내쫓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앤드류는 이에 겁을 먹고 긴장하지만 쉬는 시간에 플레처가 앤드류를 불러 격려를 건네면서 그의 가정사와 학습 배경 등을 물으며 그를 안심시킵니다. 수업 시간 플레처는 앤드류에게 "위플래쉬"의 연주를 시키는데, 앤드류가 긴장한 탓에 지속적으로 박자를 틀리자 의자를 그에게 집어던지고 앤드류에게 들었던 가족사항을 토대로 그에게 패드립을 내뱉으며 그의 자존심을 무너뜨립니다. 심지어 성차별, 인종차별, 호모 포비아적인 발언에 앤드류의 뺨을 후려치는 등 강제로 그가 박자를 익히게 만듭니다. 모두가 지켜보는 곳에서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한 채 앤드류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플레처는 그의 마음 상태를 이용하여 지금 느끼는 감정에 대해 분노하고 소리치라고 윽박질르면서 앤드루를 조롱합니다. 결국 앤드류가 화가 난다고 소리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플레처는 더 열심히 연습하라는 말과 함께 수업을 끝냅니다. 앤드류는 그가 받았던 치욕과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에 매진하였습니다. 하지만 스튜디오 밴드의 메인 드러머 자리는 태너가 차지하고 있었고 끝내 연주 기회가 앤드류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밴드 동료인 태너는 앤드류에게 '위플래쉬'의 악보를 맡겼는데 학교 경연 대회날 경연 쉬는 시간에 앤드류는 태너의 악보를 잃어버리고 마니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플레처는 우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악보를 맡긴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태너를 혼냈고 악보 없이 무대에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태너는 악보가 있어야만 연주가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 앤드류가 자신은 악보를 모두 외웠다며 본인을 어필했고, 플레처는 그에게 "위플래쉬"의 연주를 맡기게 됩니다. 무사히 연주를 마치고 셰이퍼 음악학교가 1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한 앤드류는 이후 메인 드러머 자리를 다시 얻게 됩니다. 앤드류의 역경과 고난은 끝나지 않았으며 플레처 교수의 폭언과 학대로 앤드류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또 물아 붙입니다. 그러나 앤드류는 포기하지 않고 드럼 주위로 떨어지는 피, 아득해지는 의식을 부여잡고 드럼에 대한 앤드류의 집착과 광기가 폭발하게 되며 완벽한 연주를 위한 드러머 앤드류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고민해 볼만한 열린 결말>

사람들은 '예술을 끝을 달성하려는 폭군 같은 스승과 끈질긴 천재 제자가 한계를 극복하고 목표를 이뤄내는 영화' 또는 '예술에 미친 스승에 의해 제자의 인간성이 파괴되어 광기에 휩싸여 미쳐가는 영화'로 엇갈릴 수 있습니다. 영화 자체가 "결과적으로 성취를 이루었다 해도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한계로 몰아붙이며 억지로 성취를 이뤄내도록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기 때문에 관객이 이 물음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각자의 평소 가치관대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네이버 등 영화 평가 사이트에서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성취담'으로 보며 자극제가 된다고 평가한 부분은 과정보다 결과에 더 중시하는 대한민국 사회 풍토를 나타내는 반증이라 볼 수 있습니다. 플레처를 비난하면서 슬프고 공허함을 느낀 나머지 30의 나이에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을 것이라고 앤드류 끝을 부정적으로 본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가학적인 교육 풍조가 재즈계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온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시각도 존재합니다. 작품의 이야기를 '예술 관련 진로에서 겪게 되는 내면적 갈등의 형상화'로 보는 시각입니다. 다시 말해, 플레처와 앤드류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예술 그 자체로 동화되며 사는 나'와 '한계를 깨기 위해 자신을 혹사시키더라도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나'의 관계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재즈 연주와는 다르게 연출하면서까지 연주 퍼포먼스에 대한 연출보다 두 사람의 갈등 관계에 더욱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 줍니다. 물론 명확한 답은 없으며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순전히 관람객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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